최근에 나는 드디어 몇년간의 숙원이었던 운전을 배웠다!
운전 면허는 성인 되자마자에 바로 땄었지만 바로 운전을 하기엔 내 실력이 충분하지 않게 느껴지기도 했고, 도로로 나가기 전에 연수를 받아야한다고 하니까 귀찮아서 그냥 장롱에 넣어버린 기억이 있다. 그때 당시에는 막연히 면허가 있으니까 어찌저찌 자연스레 운전을 하게 되지 않을까 생각했던 것 같다. 물론 그런 일은 없었다 ㅋㅋㅋ
근데 그 이후로 몇년씩 지나다보니 점점 주위 친구들이 하나 둘 운전을 할줄 알게 되었다. 어디 여행을 갈 때는 그냥 렌트카를 끌고 가는 경우도 많았고, 운전을 할 줄 아는 친구들이 한둘이 아니었어서 그냥 컨디션에 따라 바꿔가면서 운전을 했었다.
처음에는 친구들이 운전해주는 여행이 편하기도 하고 재밌기도 해서 좋았지만, 어느순간부터 좀 미안한 감정이 생기기 시작했다. 아무리 운전을 좋아한다고 하더라도 힘들 때도 있고 귀찮을 때도 있을텐데, 내가 운전을 못해서 도와주지 못하는게 좀 그랬었다.
더군다나 회사에는 나보다 적게는 다섯살, 많게는 스무살 서른살 많은 동료분들이 계셨어서, 운전을 하는게 그냥 당연한? 그런 느낌이었던 것 같다. "우와 누구누구님 운전할줄 알아요?" 이렇게 물어보면 뭔가 당연한걸 묻냐는 것 같은 그런 느낌.. 그래서 진짜 어른들은 다 운전을 할 줄 아는구나 생각이 들기도 했다 ㅋㅋㅋ
그래서 운전을 배워야겠다고 조금씩 생각을 하기 시작했는데, 이번에 퇴사를 하면서 복학전까지 시간이 좀 남으니까 이 참에 배우기로 마음을 먹고 연수를 받았다! (이번 복학 전 휴식기간의 가장 큰 목표였다)
학원차로 10시간, 자차로 4시간해서 총 14시간을 받았고, 중간에 더 받을까 했지만 선생님께서 혼자 운전하는게 더 금방 늘거라고 말씀하셨어서 더 추가는 안했었다.
첫날부터 잠원 -> 신사 -> 청담 -> 압구정 로데오 -> 신사 -> 논현 -> 반포 -> 잠원 이런 코스를 밟았는데, 차가 진짜 너무 많아서 운전이 쉽지 않았고... 진짜 1초에 한번씩 비싼 외제차를 봤다 ㅋㅋㅋ 운전하면서 계속 "와 저 차 긁으면..." 생각했던 것 같다 ㅋㅋㅋ
새로 생긴 이케아도 한번 다녀오고, 판교역도 한번 다녀오고, 학교도 한번 다녀오고.. 이곳 저곳을 많이 다녀봤다!
어쨌든 연수가 마무리된 지금은 아직 100%의 자신감은 없지만, 그래도 필요하면 운전할 수는 있겠다는 자신감 정도는 생겼다! 심지어 어제는 부모님을 모시고 코스트코까지 다녀왔다 ㅋㅋㅋ
근데 운전을 배우고 조금씩 할줄 알게 되면서 뭔가 시야가 더 넓어진 느낌을 받았다. 차의 입장에서 생각해본적 없는 나는 운전자들이 느끼는 불편함이나 어려움들을 아예 몰랐었는데, 운전을 조금씩 할줄 알게 되면서, 이제 걷다보면 이 차는 왜 저러고, 저 차는 왜 저러고 하는지가 조금씩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예전같으면 그냥 단순히 "이 차 왜이래"라는 생각에서 머물렀을 상황들에서, 이제는 "아 저기를 들어가려고 그러는거구나, 저기서 못꺾어서 그러는거구나"하는 생각들이 들기 시작했다. 심지어 골목 운전을 하면서 처음으로 사람이 아닌 차의 입장에서 도로를 보게 되니까, 사람들의 움직임 하나하나가 무서웠다. 갑자기 사람이 어디서 어떻게 튀어나올지 모른다는 불안감과, 도로 한복판에서 휴대폰을 보며 걷고 있는 사람들.. 운전자들은 이렇게 어려운 운전을 했던거구나 싶었다.
운전을 할 줄 알게 되면서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가 넓어졌다는 생각을 하니 꽤나 기분이 좋았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이래서 다양한 경험을 많이 해봐야하는구나 생각했다.
나는 원래 하는 것만 하는, 한 우물만 죽어라 파는 성격이라서, 내가 좋아하는게 아니면 도전을 안하는 편이다. 그리고 승부욕때문에 내가 잘하는 것들만 좋아하게 되다보니, 내 전문 분야가 아니면 아무것도 모르는 스페셜리스트 성향의 사람이다.
물론 이 성격과 성향의 장점도 있다. 흔히 제너럴리스트라고 부르는 사람들은 오히려 이러한 성향을 갖고 싶어하기도 한다.
하지만 최근에 점점 느끼는건, "아는 만큼 보인다" 라는 말이 진짜 너무 맞는 말이더라.
애초에 인간은 본인이 알지 못하는 방향으로는 사고할 수가 없다. 내가 만약 운전을 계속 못했다면, 난 운전자들의 고충을 평생 알 수가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 점은 공감 능력과도 꽤나 밀접하게 연관되어있는 것 같다. 경험해본적 없는 상황에 어떻게 진심으로 공감을 할 수가 있을까?
살다보면 공감을 하지 못해서 발생하는 갈등들이 꽤나 많다. 상대방의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상대방의 상황에 놓여본 적이 없기 때문에,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의 선택과 행동들을 비난하고 비판한다.
연예인들의 극단적인 선택을 보고, 돈도 많고 가진 것도 많으면서 왜 저런 선택을 하냐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면서 본인이 그 연예인이었다면 그 돈으로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호화로운 삶을 살거라면서 어리석은 선택을 했다며 비판한다.
하지만 일반인은 그 연예인들의 상상할 수도 없을 정도의 압박과 스트레스를 받아본 적이 없기 때문에, 그냥 대충 본인이 겪어본 가장 스트레스 받는 상황을 떠올리곤 쉽게 왈가왈부한다.
살짝 딴 얘기로 새긴 했지만.. 아무튼 최근에는 조금이라도 더 어릴 때 많은걸 경험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고, 100% 정답이 되는 선택지는 없더라도 조금이라도 더 정답에 가까운 선택들은 분명 존재한다.
어떠한 갈림길에서 고를 수 있는 길이 백만개가 있다고 가정해보자. 그중에는 목적지에 최적의 동선으로 도달하는 길들도 있고, 목적지에 도달할 수는 있지만 빙빙 돌아가야하는 길들도 있고, 목적지에 도달하지 못하는 길들도 있을 것이다.
당연히도 이 백만개의 길들중에서 나는 내가 지금까지 걸어온 길들에서의 경험을 기반으로 최적이라 예상되는 길을 고르게 될 것이다. 그리고 내가 경험해보지 못한 길들은 사실상 막힌 길처럼 여길 것이다. 그 길 뒤에 무엇이 있을지 아예 예상이 안되니까, 그 길을 고르는 것은 도박이나 다름이 없다. 심지어 어떤 길들은 아예 존재 여부도 모르고 지나칠 수도 있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가장 최적의 길은 막히거나 보이지 않는 길중 하나일 가능성이 있다.
그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내가 그 길들은 선택할 수가 없는 이유는, 나는 내가 지금껏 걸어온 길들을 기반으로 선택을 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안전지향적인 경향은 내가 걸어온 길이 멀면 멀수록 짙어진다. 새로운 길을 골랐을 때의 리스크가 점점 더 커지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더 예상이 되는 길들을 고르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어느순간부터 예상되는 길들만 걸어서는 더이상 목표에 가까워지지 못한다. 내가 예상이 되는 길이 꼭 목표에 가까워지는 길이라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어느 순간부턴 목표에서 조금씩 멀어지는 길들밖에 안남을 수도 있다.
반면에 내가 아직 걸어온 길이 멀지 않다면, 앞길이 예상되는 길보다는 좀 더 새롭고 재밌어보이는 길을 비교적 쉽게 택할 수 있다. 잃을게 많지 않기 때문이다. 근데 이렇게 다양한 길을 걸으면 초반에는 목적지에 너무 천천히 다가가고 있다고 느낄 수 있다. 심지어는 내가 그냥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다고 느낄 수도 있다.
물론 진짜로 그럴 수도 있다. 그 다양한 선택지들이 목적지에 빨리 가까워지는 선택지들은 아니었을 수도 있고, 실제로 그냥 제자리 걸음을 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잃을게 비교적 적은 초반에 다양한 길들을 걸음으로써 조금씩 길을 보는 눈을 기를 수 있다. 그리고 이 길을 보는 눈은 복리로 다가오게 된다.
초반의 삽질로 인해 앞으로 고를 수 있는 선택지가 많아졌고, 무엇이 더 좋은 선택지인지를 볼 수 있게 되었기에, 그 이후부턴 정답에 가까운 선택지들을 자주 고를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이 연속적인 정답에 가까운 선택들이 훨씬 더 빠르게 나를 목적지에 가까워지게 도와줄 수 있다.
말로 하면 잘 안와닿을 수 있으니, 간단한 수식으로 다시 한번 생각해보자.
내가 도달하고자 하는 목표가 z라고 가정해보자.
현실에는 훨씬 더 많은 변수들이 있겠지만, 그냥 간단하게 (x + n^y = z)라는 수식을 떠올려보자.
초반에 안전한 길, 리턴값이 예상이 되는 길들은 x값을 올려준다. x값이 올라가는건 눈에 직관적으로 보이기때문에 심리적 안도감과 만족감도 같이 채워진다. 초반에 도전적인 길, 리턴값이 예상이 전혀 안되는 길들은 y값을 올려준다. y값이 올라가는건 눈에 직관적으로 보이지 않아서, 심리적인 불안감이 계속 있다.
안전한 길을 택하는, x를 올리는 사람들은 초반에 빠른 속도로 발전한다. 목표에 생각보다 더 일찍 도달할 것 같다는 희망을 갖고 열심히 노력한다.
하지만 어느순간부터는 x만 올려서는 목표에 도달하기가 어렵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근데 그때 가서 y값을 올리는 선택들을 하자니, 지금까지 쌓아온 x를 전부 다 잃을 수도 있다는 불안감을 경험하게 된다. x를 올리는건 크게 의미가 없어보이고, y는 무서워서 올리지 못하고, 그렇다고 목표를 이루지 못하는건 싫으니, 결국 목표를 낮춰서라도 목표에 도달하게 된다.
그렇다고 x를 중점적으로 올리는 사람들이 노력을 안한건 아니다. 진짜 그 누구보다도 열심히 살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피나는 노력에도 목표를 도달하지 못하니까, 단순히 "노력만으로는 성공할 수 없다"고 생각을 하게 된다.
반면에 y를 올리는 노력을 하는 사람들은 초반에 x를 올리는 선택을 한 사람들에 비해 느린 발전에 상심한다. 분명 엄청나게 노력을 하고 있는 것 같은데 눈에 띄는 발전은 없어보이고, x를 올리는 사람들은 초반에 빠른 속도로 올라가니까 비교하면서 내가 잘못된 선택을 한건가 걱정한다.
하지만 y를 올리는 사람들은 시간이 지날 수록 목표에 다가가는 속도가 빨라지는 것을 체감하게 된다. 단순히 x만 올리는 노력을 했으면 몇년이 걸렸을 발전이 불과 몇개월사이에 일어나는 것을 경험할 수도 있다.
난 지금까지 x를 올리는 것에 급급했다. 프론트엔드 공부를 처음 시작하고 얼마 안가 군복무라는 큰 산을 맞닥뜨렸고, 빨리 취업은 해야하는데 좋은 회사에서 일을 하고 싶으니, 가시적인 발전과 성과를 위해 x를 올리기 위해 노력했다.
실제로 한동안은 꽤나 빠르게 발전했고, 내가 개발에 재능이 있는건가 착각도 하고 그랬다. 근데 어느순간부터 발전이 더뎌지기 시작했다.
신입 단계에서의 성장은 이미 많은 사람들이 먼저 경험하고 공유한 자료들이 많아서 비교적 쉽고 빠르게 가능하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정체되어있는 구간에 도달하고 나면, 남들이 더이상 내 성장을 떠먹여줄 수가 없다.
내가 직접 고민하고, 고뇌하고, 생각을 해야지 조금씩 조금씩 성장을 하게 된다. 하지만 이 단계에서의 성장은 초반의 성장에 필요한 노력의 몇배는 더 필요하다.
나는 이 단계를 경험하면서, 개발에 대한 흥미를 조금씩 잃기 시작했었다. 초반에 빠른 성장을 위해 등한시했던 중요한 기초와 다양한 경험의 부재가 내 발목을 잡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기초를 다시 공부하고 새로운 경험을 하자니, 내가 지금까지 쌓아온걸 조금씩 잃어가는게 두려워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오랫동안 고민을 했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나는 인생을 길게 보자고 마음 먹고, 잠시 x를 올리는걸 멈추고, y를 올리는 노력을 하기 시작했다.
개발적으로는 프론트엔드만 공부하는게 아닌, 백엔드, 클라우드 분야 등을 다양하게 경험하고 공부하고 있고, 복학 이후부턴 좀 더 기초에 치중된 CS 공부를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단기적으로는 이 선택이 내가 쌓은 3년의 프론트엔드 개발 경력이 물경력으로 보이게 할 수도 있을거라고 생각한다. 나중에 졸업 후 다시 프론트엔드 개발자를 하고 싶어졌을 떄는, 3년 경력이나 있는 사람이 이정도 실력밖에 없냐면서 취업을 못하거나 몸값을 낮춰야할 수도 있을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난 장기적으로 프론트엔드 개발자가 아니라, 소프트웨어 엔지니어가 되는 것, 그리고 미래에는 스태프 엔지니어로서 회사의 기술적인 매니징을 하는 것이 목표이다. 그리고 그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선, 눈 앞에 보이는 x를 올리는 것에 급급하기보단, 보이지 않는 y를 조금씩 올려야한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난 다니던 회사를 퇴사하고, 재밌게 하고 있던 개발을 잠시 내려놓고, 기초로 돌아왔다.
나중에 내가 이 선택을 후회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냥 우직하게 프론트엔드를 공부할껄 후회하고 있을 수도 있다.
근데 결국 아는만큼 보인다고, 내가 아는 선에서는 지금 이 선택이 최선의 선택이라고 믿는다.
물론 확신은 없다.
하지만 이 선택이, 운전이 내 시야를 넓혀준 것 처럼, 내가 앞으로 인생을 살아가면서 더 정확한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시야를 넓혀줄거라 믿는다.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니까.